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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벌콥의 인간론 요약 / 신원균 교수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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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벌콥의 인간론 요약

/ 신원균 교수

 

 

Ⅰ. 서 론 :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철학과 신학의 가장 난해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이 문제가 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악이 가진 힘은 크고 보편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삶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늘 긴장감을 가지고 악의 기원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여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세상에 있는 도덕적인 악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악이 삶 그 자체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사물의 자연적 구조에서 찾았다.

 

그러나 한편 어떤 학자들은 악은 자율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나 과거를 막론하고 인간의 선택에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진리에 보다 가깝다. 그러나 한편 어떤 학자들은 악은 자율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나 과거를 막론하고 인간의 선택에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진리에 보다 가깝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신의 의지로 죄를 선택함으로 죄를 선택함으로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다(창 2:17; 롬 5:12). 그래서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은 공통된 근원 즉,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막 7:21-23). 이렇게 전적으로 타락된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모든 악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상의 죄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으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미 범법자로 묘사된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신의 의지로 죄를 선택함으로 죄를 선택함으로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다(창 2:17; 롬 5:12). 그래서 우리가 짓는 모든 죄들은 공통된 근원 즉,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막 7:21-23). 이렇게 전적으로 타락된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모든 악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상의 죄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으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미 범법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현재주의자들은 죄를 단지 동료 인간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들은 죄가 빈번히 자신들의 반역하는 정신을 충동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책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죄의 개념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과 인간사이의 윤리적, 도덕적 관계로만 해석되고 있다. 이제 루이스 벌콥의 인간론을 중심으로 죄에 대해서 살펴보고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바른 개념과 역사적으로 대두되었던 인간론을 살펴봄을 통해 바른 인간관을 정립해 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성경적 죄의 개념

 

1) 죄는 악의 구체적인 형식이다.

 

모든 악이 죄는 아니다. 죄는 물리적인 악, 곧 어떤 해로운 것 또는 재난 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죄는 악보다 구체적인 개념이다. 죄는 도덕적 악이다. 성경에서 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 대부분의 명칭은 윤리적인 의미를 가진다.

 

죄는 불시에 인간에게 덮쳐서 인간의 삶에 독을 주고 그의 행복을 파멸을 이끈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의도적으로 따르기로 선택한 악의 길이요 미증유의 재난을 동반한 길이다. 근본적으로 죄는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없는 연약성, 실수, 불완전성과 같은 수동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요 그의 율법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것으로서 소위 죄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죄는 인간의 자유로운 그러나 악한 선택이다(창 3:1-6; 사48:8; 롬 1:18-32; 요일 3:4).

 

2) 죄는 절대성을 갖는다.

 

윤리적인 범주에서 선과 악의 대비는 절대적이다. 선과 악 사이에 중립 지대는 없다. 선한 도덕적 존재는 단순히 자신의 선을 축소시킴으로써 악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적인 변화, 곧 죄로 향함으로써 악하게 되는 것이다. 죄는 선의 정도가 적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악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행위에 의하여 악으로 규정된다. 성경은 어떤 형태의 중립성도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옳은 편에 서든지 아니면 그릇된 편에 서든지 양자 택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 10:32,33; 12:30; 눅 11:23; 약 2:10)

 

3)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관련되어 있다.

 

죄란 “하나님의 율법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의 가장 중심적인 요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도덕적 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도덕적 악은 그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악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요, 하나님에 반대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끊임없이 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롬 1:32; 2:12-14; 4:15; 약 2:9; 요일 3:4)

 

4) 죄는 죄책과 부패를 포함한다.

 

죄책은 율법 또는 도덕적 요구를 어긴 행위에 대해서 처벌 또는 정죄를 받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죄책은 인간 안에서 생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수여자가 법적으로 제정한 것이다. 죄책에 대한 형량을 정하는 것 역시 율법 수여자이다. 죄책은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직접 또는 대속적으로 충족시켜 줌으로써 제거된다. 많은 사람이 죄는 죄책을 포함한다는 견해를 부인하나, 이는 죄에 대해서 처벌이 뒤따를 것을 경고하는 현실적 상황과 부합되지 않으며, 성경의 평범한 진술과 어긋난다(마 6:12; 롬 3:19; 5:18; 엡 2:3).

 

부패는 모든 신자에게 생득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부패는 죄책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법적인 관계 안에 포함되어 있는 죄책은 직접적인 부패 없이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죄책에는 항상 부패가 따른다.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진 자는 결과적으로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욥 14:4; 렘 17:9; 마7:15-20; 롬 8:5-8; 엡 4:17-19)

 

5) 죄는 마음속에 거한다.

 

죄는 혼의 어느 한 기관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거한다. 죄는 인간의 의지에 기원하지만 의지는 인간의 의지적인 본성 또는 의지적인 행위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실제적인 의지의 밑바닥에는 마음의 성향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잠 4:23; 렘 17:9; 마 15:19,20; 눅 6:45; 히 3:12)

 

6) 죄는 단순히 외적인 행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습관과 영혼의 죄악된 상태까지도 가리킨다. 죄악된 상태는 죄악된 습관의 기초가 되고, 이것들은 다시 죄악된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나 거듭되는 죄의 행위는 죄악된 관습을 낳는다. 자연인의 생각과 감정이 “육식적”인 것으로 불릴 수 있으며 동시에 죄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마 5:22,28; 롬 7:7; 갈 5:17,24등을 보면 알 수 있다.

 

2. 죄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 근거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은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음을 명백히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자로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악도 불의도 행치 않으신다(욥 34:10). 그는 거룩하시다(사 6:3). 따라서 그의 안에는 불의가 없다(신32:4; 시 92:16). 그는 악에게 미혹될 수 없으며, 친히 아무도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약 1:13).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선하게 그리고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는 적극적으로 죄를 미워하신다(신 25:16; 시 5:4; 11:5; 슥 8:17; 눅 16:15).

 

이 모든 말씀을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자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사물의 본질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하나님의 필연성으로 생각하는 결정론적인 견해를 거부해야 한다.

 

2) 죄는 천사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일군의 천사들을 창조하셨다. 이들이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모두 선했었다(창 1:31). 그러나 천사의 세계에 타락이 있었고, 이때 일군의 천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천사들의 타락을 초래한 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딤전 3:6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새로 입교한 자를 감독으로 세우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그 권고의 이유를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가능한 추론은 천사를 타락시킨 것은 권능과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의 죄일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그들의 욕망이 바로 그들이 특별히 받았던 시험이라면, 이 사실은 인간이 왜 이 점에서 그토록 크게 유혹을 받는가를 알 수 있다.

 

3) 인류 안에 있는 죄의 기원

 

죄의 기원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은 아담이 낙원에서 범죄함과 더불어 죄기 시작되었다는 것이요, 따라서 죄는 인간의 고의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담이 단순히 하나의 죄를 범했다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최초의 죄로 인해서 아담은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죄는 영원한 부패를 동반했다. 이 부패는 인류의 연대성 때문에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그의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인류의 조상은 타락함으로써 그의 후손에게 부패한 본성을 물려주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범죄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의 대표적인 머리로서 범죄했다. 그러므로 그의 죄책도 후손들에게 전해짐으로써 모든 인류의 후손이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롬 5:1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짊어진 죄인이라고 판단하신다. 그것은 그 방법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판단받는 것과 같다(롬 5:18,19)

 

1) 원 죄

 

인간은 죄악된 상태와 조건 안에서 태어난다. 이 상태을 신학에서는 원죄라고 부른다. 원죄는 원초의 죄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죄책은 선천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죄를 원죄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원초적인 뿌리로부터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생명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모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용어를 죄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구성 요소에 속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죄인으로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위 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 용어를 죄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구성 요소에 속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죄인으로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위해야 한다.

 

인간은 그가 책임적인 도덕적 행위자가 되는 데 필요한 구조적 기능들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이성, 양심,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에게는 지식을 획득하고 도덕적인 특징과 의무를 느끼고 인식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의 감정․성향 ․ 행위는 자발적이어서, 자신에게 적절한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선하고 우호적이며 인애롭고, 정당한 것을 감득(感得)하고 행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실질적인 자유를 상실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원초적이고 도덕적인 구조적 요소와 조화를 이루면서 최고선의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편견에 사로잡혀 악을 지향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인간에게는 영적인 탁월함을 인식하고 사랑하거나, 영적인 일들 곧 구원에 속한 하나님의 일을 추구하고 행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2) 자범죄

 

원죄는 인간의 오염된 자질 또는 상태이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책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내적인 부패가 모든 자범죄의 거룩하지 못한 원천이다.

 

‘자범죄(실제적 죄)’라는 용어는 몸을 통하여 행해진 외적인 행위들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원죄에서 유래하는 모든 의식적인 사유와 의지를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의 선천적인 본성 및 경향과 구분되는 개별적인 죄의 행위를 가리킨다. 원죄는 하나요, 자범죄는 다양하다.

 

자범죄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의식적인 의심이나 악한 계획 또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특별한 의식적인 욕망이나 탐욕 같은 내적인 자질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속임, 도둑질, 간음, 살인 등과 같은 외적인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3. 죄의 형벌

 

1) 형벌의 본질과 목적

 

“형벌”이란 율법을 범함으로써 침범당하는 공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율법 수여자가 직접 ․간접적으로 가하는 고통 또는 손실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형벌은 하나님의 의 또는 형벌적 정의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거룩한 자로 주장하시며,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에게 필연적으로 거룩함과 의를 요구하신다. 형벌은 죄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가해지는 벌을 말한다.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적 공의에 기인하는 일종의 빚이다.

 

형벌의 목적은 거룩한 의도는 정의의 수호이다. 율법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서있다. 그러므로 형벌의 목적은 위대한 율법 수여자의 의와 거룩함의 수호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필연적으로 죄에 대항하며, 이와 같은 대항은 죄를 처벌하는 데서 그 모습이 드러난다(신 32:4; 욥 34:10,11; 시 62:12; 119:137; 렘 9:24; 벧전 1:17)

 

오늘날 전면에 크게 부각되고 있는 형벌의 목적은 죄인의 처벌을 가차없이 요구하는 형벌적 정의가 없으며, 하나님은 죄인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며, 죄인에게 역경을 주시는 것은 다만 그를 교화 시키고 그를 아버지의 집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형벌이 교정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의로운 것으로 곧 정의에 입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미 교정된 죄인은 더 이상 처벌될 수 없으며, 인간에게 교정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결국 사탄에게도 형벌이 있을 수 없으며, 사형이라는 형벌은 폐지되어야만 하고, 영원한 형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또 오늘날 보편화된 또 하나의 이론은 어떤 죄인이 범한 비슷한 죄를 다른 사람이 범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사회를 보전하기 위하여 형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형벌을 가하실 때 자비롭게 뒤따르는 부수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죄인은 언제나 자기 죄 때문에 처벌되며, 이것이 부차적으로 사회를 유익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이론이 참되다면, 어떤 범법자가 형무소에 갇혀 있을 때, 그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키게 할 수 없다면 그를 내보내야 한다. 더욱이 형벌을 기꺼이 견디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범죄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2) 죄에 대한 실제적인 형벌

 

성경은 죽음이 죄를 통하여 들어왔으며(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롬 6:23) 말한다. 죄에 대한 형벌에 육체적인 죽음이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상 여기는 그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영적이 죽음이 있다. 죄는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킨다. 이 같은 분리는 죽음을 의미한다. 살아 계산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 인간은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초래된 죽음의 상태 안에서 우리는 죄책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죄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둘째로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초대되는 삶의 고통도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가 된다. 죄는 인간의 삶 전체를 교란시킨다. 인간의 육신적인 삶은 연약성과 질병의 포로가 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불안과 쓰라린 고통이 초래된다. 그의 정신 생활도 그를 좌절하게 만드는 갖가지 방해거리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오늘날 홍수, 지진, 태풍, 화산 폭발등 이런 사건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읽지 않으며, 그 재난들이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재난들을 개별화 시켜서, 재난이 일어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범한 심각한 죄에 대한 특별한 형벌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늘에 서 불이 내려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죄와 재난의 인과 관계를 무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못 된다. 우리는 언제나 집단적인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하며, 하나님께서 어느 도시들, 구역들, 그리고 국가들을 재난으로 벌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셋째로 육체적인 죽음이다. 몸과 영혼의 분리도 또한 죄의 형벌의 일부이다. 교회의 입장은 언제나, 육체적인 죽음을 포함하여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죽음은 죄의 결과인 동시에 죄의 형벌이라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창 3:19; 롬 5:12-21; 고전 15:12-23)

 

마지막으로 영원한 죽음이다. 이 죽음은 영적인 죽음의 절정이요,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속박이 제거되고 죄로 인한 부패가 완성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저주받은 인간에게 임한다. 인간이 생명과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된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의미에 있어서 죽음이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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