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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목회

위로 예배 설교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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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문 1



성경구절 : 살전 : 4:13-18


설교제목 : 복된 죽음


설교자 : 윤 형기 목사



오늘 우리는 고 000 집사님의 소천을 감사하면서 아울러 유족을 위로하는


예배를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의 죽음은 실로 그 누구도 때와 시를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깨닫고 있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가장 공평한 법을 하나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고 반드시 한번 죽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 이후 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집사님의 생명을 단 하루라도 연장할 수 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못했겠습니까?


이 시간을 빌어서 먼저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짧은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인생의 삶이 손바닥 넓이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 했습니다.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신속히 시들어 버립니다.


또한 나그네의 삶이라고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과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해답을 찾으려고 했으나 오늘까지 여전히 못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쾌하게 그 해답을 합니다.


우리 집사님은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짧은 인생을 살다가


때가 되매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될 모든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족 여러분은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때가 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아름다운 천국을 사모하면서


더욱 더 주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결혼식에 가는 것 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간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짧은 시간을 통하여 인생이 무엇인지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혹 이 자리에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는 분이계십니까?


이번 기회를 통하여 생명의 주를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집사님의 죽음이 왜? 복된 죽음일까요?


1.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이 없이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아울러서 이 부름은 죽음이란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해야 합니다.


집사님의 죽음이 혈육의 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히 부르셨다면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그 곳은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희락과 소망이 충만한 곳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장 귀한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 완수하시고 주님의 특별하신 초청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신 주님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숨을 거두고 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 천국에서 눈을 떤 집사님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천국을 진작 알았다면 세상에 살 때 더욱 더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 . .즐거운 후회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2. 복된 안식을 영원히 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등이 발명되기까지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24시간 불을 밝혀두고 영업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여 더욱 더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지만 실제는 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집사님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주님은 잠자는 것이라 했습니다.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려 가시면서 주님은 내가 잠자는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평안할까요?


잠자는 때입니다. 마치 잠자는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집사님!하고 흔들어 깨우면


금방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깨우지 맙시다. 고해와 같은 세상으로 다시 부르지 맙시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요.


고통과 시험과 질병, 그리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없는 곳, 영원한 기쁨과 소망과


복이 가득한 곳, 그곳에서 참된 쉼을 누리시는 집사님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봅시다.


끝으로 집사님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 강림하실 때에 주님과 영광가운데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죽은 성도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사시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함께 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집사님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주님과 함께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오실 때 영육이 합하여서 주님과 같은 신령한 모습으로


영원한 승자의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 없는 자 같이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사님을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뿐입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주님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더욱더 경건하게 살아갑시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유족들에게 사람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아울러 이 장례의 모든 절차가 은혜가운데서 경건하게 치러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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