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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목회

발인예배 설교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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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병석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복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주께서 안식으로 데려 갔었습니다. 고인에게는 큰 기쁨의 시간일 것입니다.

천국은 이곳보다 몇 천 배나 더 복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고인은 지금 이 약속의 처소에 계실 것입니다.

천국이란 예수님께서 약속한 처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은 우리가 처할 처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할 곳을 예비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보다 000님을 먼저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수많은 날에 가졌던 고통, 그 마음의 아픔과 육체적 고통이 다

사라졌습니다.

천국은 또한 재회의 처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 모두 천국에 가면 더 이상의 죽음도 이별도 없습니다.

거기서는 영광스러운 교제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운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꼭 도와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를 꼭 만나고 싶거든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천국에는 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필요하지 않게 여겼던 것은 천국에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으로 고통당하고, 또한 불구처럼 불편해서 그 모든 것도 거기서는

다시는 재발되지 않고 다시는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병으로 인해서 우리가 건강도 나쁘면서도 고통스러웠고,

또한 건강한 것 같으면서도 염려스러웠고, 걱정스러웠고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한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하다 했습니다.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소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러한 모든 분야가 충족되기 때문에 부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는 슬픔이 있고 아쉬움이 있지만, 고인에게는 오히려

경사스러운 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죄악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과 같이 우리는 이별의 슬픔, 안타까움의 슬픔도 거기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천국에는 사망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나니...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수 영접하셨지만 천국에서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 . .

그런데 정말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줄거리만 내렸습니다.

천국은 우리들을 남겨두고 떠난 000님의 현재의 집입니다.

000님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예수님께 속하여 천국의 처소를

소유하라고 외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이제 사랑하는 000님께 작별을 고하며

언젠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영원히 빛나고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 예문 2


성경구절 : 이사야 40 : 6-8절

설교제목 :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먼저 성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평강과 소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고 000 님의 발인예배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이란 제목으로 잠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과 모든 삼라만상을 볼 때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으시는 것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모든 창조가 끝났습니다.

그 모든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는 아주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나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다 보니,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게 되었고, 책임을 전가하는 죄를 짓게 되고, 점점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롬6:23에 말씀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람을 사망으로 가게 내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망으로 가던 인생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게 하셨고(요 3:16),

죽음에서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마음에 악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지 않고 죄를 짐짓 지어 가는 사람은 풀과 같이 시들고 결국 사망인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왜 지옥에 가야합니까? 말씀을 믿지 않았고,

불순종하므로 죄를 짓게 되고, 죄는 곧 불법이라(요일 3:4)불법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이 지옥의 중한 벌, 영원히 받는 형벌이지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며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무엇입니까?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야고보서 4:14 에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이 아무리 푸르러도 여름 한 철이요. 폭풍 설한이 몰아치면 제각기 낙엽 되어

우수수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사람을 안개에다 비유하고, 풀에다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진대 사람이 무엇으로

그 업을 남겨야 합니까? 명예, 권세, 지위 그 무엇으로 이 세상에 남기고 갑니까?

옛 성인들은 말씀하시기를 "在人名이요 虎在 皮"라 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죽은 뒤에 이름을 남겨서 무엇 할 것이며,

아무리 유명한 지위, 권세가 있었다 해도, 나 죽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 000 님과 같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신대로

우리의 이름, 지위, 명예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초종 목표는 천국입니다.

빌3:14에서 사도 바울은 "표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하신 대로

우리의 푯대는 천국이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비록 풀과 가고 꽃과 같아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든든히 가지고 주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시고 사명감당하시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3


성경구절 : 요 11: 25-27, 35

설교제목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발인예배의 뜻은 한 인생이 흙으로 지음을 받아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예배의식을 말합니다.

고 000성도님만 이런 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여러분 각자가

발인예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창3장에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죄 하기 전에 미리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죄를 짓지 않으면 영원히 살 것인데 죄를 범하면 죄 값으로 너희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때 죄의 결과로 인간들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언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최초에는 죽음이 없던 이 인류에게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와서 사람들은 살다가

수명대로 죽기도 하고, 병들어서 죽게 되고, 혹은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악한 사람도 눈물 흘리고,

좋은 사람도 눈물 흘리고 슬퍼합니다.

이 죽음이 얼마나 악한 사건이지 모든 사람은 자기 가족, 친척,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큰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키

위해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죄악의 문제를,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이겁니다.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되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바로 그분을 믿으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그 예수님이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의 귀한 복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베다니 지역에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분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나사로에게는 여동생이 둘 있었습니다.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오빠가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이 여동생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는냐?" 여동생들은 “예” 저는 믿습니다.

앞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은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명하시므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가지 그림입니다.

고인도 예수님이 오실 때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 부활의 몸으로 우리 모두를 만나

볼 수 있는 축복을 베풀어주신다는 놀라운 복음의 소식입니다.

나는 오늘 감사를 드립니다.

고 000성도는 오랜 세월동안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연세 많은 지경에 예수님을 자기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믿어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이 딸은 죽었습니다 만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고 000성도는 이미 썩어서 흙이 된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또 그날까지 고인의 그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천국에 올라가서 사망이 없고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질병이 없는 영원한 그 천국에서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지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장례식에서는 아이고! 아이고! 통곡도 나오겠지만

그 보다 더 영혼이 구원 받은 기쁨에서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 장례예식은 영결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지요 앞으로 여러분께서 예수님 믿고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 즉시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여러분이 보고 싶다는 그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머님은 비록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그 영혼은 천국에 계십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실 그 날에는 썩은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으로 바라보면서 주님을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께서 확신하시고 마음에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지옥가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 놀랍고도 슬픈 사건을 맞이해서 3남2녀 모든 자손들도 어머님이 누리시던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언제 내가 이 땅을 떠날지라도 여러분께서는 죽는 것이 아니고 그 즉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올라 가셔서 나의 영이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갖게 된다는 것,

이것이 분명히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서 금번 우리 어머님의 죽음이 결코,

결코 헛된지 않도록 이 고귀한 한 영혼의 죽음이 온 우리 집안의 식구들이

구원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시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죄악이라도 그분은 다 용서해 주십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나의 정성을 다해 효도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발인예배를 맞이하면서 우리 예수님 앞에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생전에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용서해 주십시오.

회개하는 열매로 앞으로 저 역시 어머님이 섬기시던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앞으로 3남2녀의 모든 식구들은 한가지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형제우애를 나누는

아름다운 가족이 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제 마음의 결단을 가지면서 예수님 주시는 부활의 소망으로 잘 극복하면서

오늘 사건을 통해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온 유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예문 4


성경구절 : 욥 30:23

설교제목 : 하나님이 지정한 곳

설교자 : 송병철 목사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이 사랑하는 참된 생명을 이 땅에 보내주신

고 000집사님 아름다운 생명의 날을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오늘 마지막 발인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오늘 하루 종일 저들과 함께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은혜가 되어지는 축복의 날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땅위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영원히 살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피조 된 모든 생명체는 영원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마음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즉 영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잉태된 존재라, 영혼이 있기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음이 왔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길 장사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그 순간부터 무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는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어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 지어지는 것은

어느 시점에 우리는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 인생의 길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무리 몸 관리를 잘 한 그러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인간은 죽을 존재라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진시황처럼 불멸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수업시간이 있고, 정치가에겐 마지막 과업이 있고,

설교자에겐 마지막 설교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또 마지막 남은 유언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 모든 생명체가 지정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가시리라고 해서

우리의 죽음이 무엇이냐 모든 생명체는 나중에 지정된 집이 있는데 그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덤으로 가는 것은 우연히 가는 것이 아니라 다 정해진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들은 한번 태어나면 결국은 무덤으로 가게 되어지는 것은 정한

과정인데 이것은 결국은 어쩌다가 불행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야하는 그런 정해진 일입니다.

이 지정된 집이 우리들이 가야할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부인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이 있을 찌라도 이건 엄연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면서 없는 것 같이 세상을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땅을 취하여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쁜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준 말씀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우리의 생애가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할 때

고 000 집사님은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희생을 아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스러운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아까운 그런 한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무슨 계획이 계신지 젊은 나이에 불러 가셨습니다.

그러고는 먼저 지정된 곳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고 000 집사님 이 가신 곳은 외로운 곳이 아닙니다

죽음은 흔히들 참 외롭지 않겠느냐고 하는 생각을 우선하게 되는데

우리 믿는 성도가 가는 예비 되어진 그곳은 외로운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정된 그 집은 이로운 곳이 아닙니다. 쓸쓸함도 없고 거기에는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곳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은 그 천국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라 그렇게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제 고 000 집사님은 외롭지 않는 곳으로 가심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먼저 믿으시고,

오늘 발인예배를 통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성도는

외롭지 않는 곳, 아름다운 모든 인생이 가야할 지정된 곳을 가심을 믿으시고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쁜 세월 중에서도 또한 도전을 받는 것은 고인처럼 이웃과 형제를 위해서 헌신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또 우리는 인생이 가야할 그 길을 알고 땅위에 있는

이 유한 된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죽음 이후에는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이 후예 상급이 없다면 고 000집사님이 얼마나 불쌍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먼저 간 남편이 주님 품에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도하시며,

헌신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힘쓰시던 그분이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상급이 없이 그대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저는 전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이 죽은 이 후에는 상급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이 자녀들과 가족들도 믿을 줄 압니다.

어머니의 삶이 헛되지 않은 줄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리고는 상급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 000 집사님의 경우를 보면 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예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힘썼고 또 자녀들을 위해서 항상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많이 쌓았을 줄 압니다.

자녀들도 신앙생활 아름답게 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치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마지막 죽음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듯이

고 000집사님은 주님 앞에서 상을 받는 그 기쁨을 지금은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이별로 마음 아파하지만 그건 누구나 가야할 정한 길이기에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 영혼이 안식을 얻고 상급을 받는 그 날의 사실을

믿을 때에 오히려 한편으로는 눈물이 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져보는 것입니다.

오늘 고인은 상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저는 믿고 여러분들도 믿을 줄 압니다.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닙디다.

참 짧습디다. 너무너무 짧은 것이기에 성경은 말했습니다.

너는 이때에 세상에 취해서 살 것이 아니라 자다가도 깰 때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나 마라톤이라고 했지만, 마라톤 같이 살면은

우리 인생은 한눈 팔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쩜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보면 100m달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눈 팔 수 없는, 숨도 몰아쉬어야 할 시간도 없는..

우리가 인생을 이 세상에 성실하게 살고자 할 때에 그것이 인생의 가치인줄 압니다.

고인은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100m달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열심히 사시다가 가신 분입니다.

많은 사람은 마라톤 하듯이 가다가 한눈도 팔고 산도 바라보면서 쉬어가면서

여유를 가지며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지만 100m 선수는 페이스가 없습니다.

숨을 모두어 쉬어야만 합니다. 그렇듯 열심히 사셨습니다.

고인은 이제 모든 곡식을 맺고 특히 과일을 수확하는 좋은 계절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가셨습니다. 고인은 이 좋은 가을! 곡식이 영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좋은 시기에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고인은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가셨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음을 기억하시고 남아 있는 우리도 이제 영광스러운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한편의 시를 읽겠습니다.

개울물은 바다 가까워 질 무렵에 가장 고요하고

꽃들은 황혼이 질 무렵이 되어질 때 가장 아름답도다.

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때에 가장 아름답게 지져귀고

성도의 삶은 결산하는 때가 가장 고귀하다네

사랑하는 000 집사님! 사랑하는 어머니여 이제 정든 집을 떠나갑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가족 내 친지들이여! 이제 나는 갑니다.

새벽부터 땀 흘려 수고하고 늦은 밤까지 수고하던 내 정든 육신의 집을 떠납니다.

내 친구들이여! 함께 주님을 섬기던 성도들이여! 그대들은 평안히 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지정한 곳으로 가오니 그대들은 평안히 잘 있으시오! 

◇ 예문 5


성경구절 : 시 119 : 97-105

설교제목 :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


고 000 집사님의 신앙특징을 제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주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을 하고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생활을 해

오셨다고 제가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일마다 하는 설교 본문을 그 주간에 주어지면 그 주간에 말씀이 길던 짧던

꼭 암송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암송하는 것이 늘 익숙하기 때문에 그 암송이 어렵지 않고 늘 기쁘고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설교 본문 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좋은 성경말씀의 구절들을 일터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암송하고 또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늘 암송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낸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인의 다른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이야기하지 아니하여도 고

인의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암송을 힘들게 하는데 고인은 말씀 안에서 늘 기뻐하며 사셨다는 자체가

고인의 신앙의 단계, 신앙의 성숙도가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표현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묵상하는 자가 받는 복은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만 살펴보고 우리가 고인의 신앙을 본받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을 종일 묵상할 때에 꿀맛보다 더 단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보다 더 하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이고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배가 고플 때 먹던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습니까?

말씀도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서 맛이 틀립니다.

고 000집사님도 말씀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맛있었기 때문에 말씀과 더불어

암송하면서 기쁨을 누렸다고 믿습니다.

고인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 속에서 그의 생애를 보내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 말씀을 묵상할 때에 명철하게 되고 모든 거짓과 악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 . .

그의 생활이 나날이 거룩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시고 그와 같이 살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는 자입니다.

내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우리의 인간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그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고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명철한 단계에 이르렀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적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의 스승들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노인들 경우에는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오셔서 경험도 많고 지혜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으로 얻은 세상지시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 묵상했을 때에 노인들 보다 스승보다

내가 더 지혜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온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다 보니까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고

악의 길에도 서지 아니하고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제가 000 집사님을 볼 때에도 말씀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늘 즐거워하셨고

늘 말씀에 따른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셋째 : 말씀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합니다.

딤후 3 말씀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과 그리고 악의 길에서 떠나

순결한 삶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있어 구원을 가져오게 되고,

구원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면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고인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인은 이러한 신앙으로 인해서 말씀을 통해서 늘 사모하며 바라던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

지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의 품에 안겨서 평안한

안식에 들어가 계십니다.

이제 고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더불어 함께 만나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만나서 두 번 다시 이별이나 헤어짐이 없는 곳,

고통이나 슬픔이 없는 그 좋은 천국생활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족들 가운데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 않는 분들 있으면 고인의 신앙을 본받아서

성경을 암송하는 깊은 차원의 신앙의 자리에까지 들어가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신앙의 단계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을 먹으면 몇 시간 후가 되면 또 갈증이 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몇 시간 후면 또 배가 고픕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황금보화를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우리 인생을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또 황금보화가 우리에게 구원을

안겨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을 때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고인은 일제시대와 6.25시대를 살아 오셨고, 좋지 않은 여건으로 인해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세상의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였지만은

그러나 고인은 주의 말씀에 만족함을 누리고 세상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늘 마음가운데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고인의 유족들은 아버지의 그 신앙!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그 신앙을

본받아서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6


성경구절 : 딤후4:7-8

설교제목 : 나그네의 여정을 마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하곤 합니다.

나그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그러기에 나그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안식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도 이 세상은 나그네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혼의 여행이 마치는 날 돌아갈 하나님의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을 천국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묻는 질문에

"내 나그네의 인생길이 130년이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하고 告白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기에 험악한 세월이요 외로움과 슬픔의 세월입니다.

세상의 안락함이 나그네 인생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인생의 안식처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이나 명예가 결코 그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건강하여 조금 더 사는 자나 조금 덜 사는 자나 역시 인생은 험한 나그네인생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가야만 합니다

정든 육신과 성도들과 영원히 떨어져서 이별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고 000 님에게는 이제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을 사모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의 죽음은 외로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망과 즐거움과 희락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온 참 본향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려 가는 것이니 그러합니다.

정든 가정을 떠난 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제 나그네의 괴로운 세월을 뒤로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셨으니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23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고 000 님의 세상을 살 동안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인도하신 주님께서 천국천사들과 더불어 000님의 영혼을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했음을 믿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居할 곳이 많도다."

그러므로 먼저 가신 000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귀하고 복된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제 이 길을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믿음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0님은 참으로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열심히 예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매주 씩씩한 걸음으로 주님 전을 찾아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본을 따라 어머니를 모셨던 000집사님,

역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도 교사로 믿음의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 잘 믿는 것이 000님의 유언이요 바램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바라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000님께서는 선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셨습니다.

험한 인생의 나그네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며 모든 이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신의 헤어짐으로 슬퍼하는 유족들을 바라봅니다.

무슨 말로나 방법으로도 위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우리들임을 깨닫게도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유족들에게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를

기쁨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목자로 모신 가정이 되셔서 천국에서 다시 살 소망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문 7


성경구절 : 요 14:1-6 시 90:10

설교제목 나를 찾아줄 부모가 있는가?


고 000 성도님 발인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일전 고 000성도님은 우리들과 똑같이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던

이 귀한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지금 이곳에 말없이 누워 계십니다.

천하만물이 일생이 끝나면 다 제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물은 바다로 가고 꽃은 시들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죽음이라는 똑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어느 사람은 사망이라 하여 애통하고, 절통하고 방성대곡을 합니다.

세상 것을 다 잃은 것이 억울하고 원통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못간 것이 애통하고 원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을 가르켜 소천 이라 합니다.

즉 하늘에서 불렀다. 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별의 아쉬움이나 아픔은 있어도 잠시 먼저 가신 분과

헤어져 사는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큰 만큼 후일에 만남의 기쁨도 클 것입니다.

먼저 가신 어머니는 천국에서 사시고 남편 되시는 분과 자녀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시다가 영혼이 구원받아서 다음에 천국에서 어머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찬송을 불러드리며 보내드려야 합니다.

육신은 지금 이 자리 우리 보는 앞에 누워 계십니다.

영혼은 벌써 천국에 도착해서 온유하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소천 이일 전에 천국에서 "흰 옷 입은 이가 왔다"고 반겨주는 환상을 보았답니다.

우리 성도님은 비록 짧은 믿음의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믿음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영안도 밝으셨고 심령이 깨끗하셨습니다. 또한 마음이 온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환상을 보신 것입니다.

천국가신 것을 믿으셔도 됩니다. 확신하셔도 됩니다.

만약에 주님이 고인에게 딸아 네 소원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어머니는 어떤 대답을 하실까요?

자식들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살게 해 주세요. 부자되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남편 건강하고 예수님 잘 믿게 해주시고, 자식들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 같이 살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는 두 주먹 불끈쥐고 크게 부르짖으며 태어납니다.

세상부귀영화 명예권세 한번 잡아 보겠다고 . .. .

그러나 이 세상 떠날 때는 두 손펴고 아무것도 못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집도 돈도 명예권세도 못가지고 갑니다.

저 세상에 가져갈 수도 없고 필요치도 아니한 것들입니다.

갈 때의 울음은 크고 씩씩한 울음이 아닙니다. 인생 살아보니 별것 아니더라

서글픈 눈물이요 이별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초상집에 가서 지혜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 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내 인생 지나온 삶이 이렇게 빨랐는데

남은 세월은 얼마나 빠를까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얼마 안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과연 제일 값어치 있는 삶일까?

인생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정말 바른 삶인가? 고민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못 깨달으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못 깨달으면 다른데서 깨닫기가 힘듭니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년 살다가 가는데 그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가지면 캄캄한 어두움이 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이가 밖에서 놀다가 밤이 와도 부모가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거기는 빛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는 나를 보호해줄 부모님이 계시고 들어가서 편히 쉴 방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부모가 와서 찾아가는데 고아는 부모가 없습니다.

해가 넘어가도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찾아줄 사람도 들어갈 집도,

갈 곳도 없습니다. 캄캄한 방은 춥고, 어두운데서 그냥 보내야 합니다.

그 방은 추위와 무서움 배고픔과 외로움 고통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어두운 밤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지옥에 영벌의 그 방은 어떻하겠습니까?

이런 낭패를 안 보려면 이 땅에서 예수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요한 복음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니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계신 저와 여러분 누구에게나 어두운 밤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이 왔을 때 여러분을 찾아줄 부모가 계십니까?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네에게는 결코 무서운 밤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예문 8


성경구절 : 약4:13-17

설교제목 :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설교자 : 강정일 목사1. .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이 타락한 이후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체 여관 같은 이 땅에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 입니다.

사람이 땅에 나그네로 올 때는 순서 있게 왔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이 시간장례 하는 이 엄숙한 자리에 서신 여러분!

땅위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이 튼튼해도 풀처럼 시드는 날이 언제 올런지 모르고

우리의 영광이 아무리 찬란해도 "꽃처럼 떨어지는 날이"올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무리 치밀하고 지혜로와도

"안개처럼 사라지는"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라고 합니다.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는 자기만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체 미래를 향하여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나님 없이 돈벌이 계획을 세우고 물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인생들의 자랑, 다 허탄한 것이며 또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꿈에도 교만하거나 욕심에 눈이 어둡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15)

2.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

고인께서는 1911년에 출생하여 향년87세로 운명하셨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므로 (히9:27)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이후의 삶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부활)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아는 사실은 고인의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앞에서 장례예배를 드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아내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은 교회의 집사로서 천국의 소망 중에 살다가

2년 만에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늘 마음깊이 남편 위해 기도했으며,

딸들과 사위들도 기도했으며 믿는 친척들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2) 본인께서 생전에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린 적이 있었고

교회에 스스로 찾아 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분이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에 저의 인도로 예배드릴 때

우리의 가슴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기독교 장례식을 진행하게 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인 줄을 믿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부르시면 내일이라도 가게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준비 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자신의 남은 여생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섞어질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 마귀 편에 서지를 말고,

속히 하나님 편에 서서 인생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잘 감당합시다.!

유족들을 위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고인의 유족 친척여러분은 서로 대화로 말미암아 피차 용서하고

형제 우애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다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앞서간 믿음의 선친들을 만나 칭찬과 상급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예문 9


성경구절 : 욥기 14: 9

설교제목 : 최후의 희망 .

설교자 : 유상규 목사


우리의 인간의 삶이란 지극히 미미하고 참으로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게 피는 꽃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청청할 것만 같이 보이던 풀도

얼마간의 시간이 자나가면 시들어서 흉물이 되어지고 아무도 거들떱지 않는 것으로

되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도 꽃과 같고 이슬과 같은데 우리 인생의 삶은 결국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된 인생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생의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지를 우리는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은 자기의 지휘관이 지휘하는대로 움직여 주어야

나라가 든든하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들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참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복된 삶을 살수가 있으며,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언젠가는 부르실 텐데 먼저 가신 000권찰님을 생각 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 동시에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부활의 종교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는 죽어도 새로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살아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귀한 사실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 이겁니다.

타 종교들은 사람이 무언가 신을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무언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산에나 바다에 가서 뭐 이상한 돌만 보아도 거기에

섬기고 절을 하고 빌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온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러한 종교, 신이 인간에게

강림하신 종교, 그래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도성인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종교가 바로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져 있는 종교이며 누구든지 믿으면

그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님께서 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000 권찰님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날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저희보다 먼저 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같이 예수 안에 사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화 함께 데리러 오시리라" 살전 4:14절에 말씀했습니다.

언젠가는 믿음의 사람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데 영원한 그 곳에

우리가 다 갈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동안에 오랜 시간동안에 살면서 인간의 미운 정 고운 정 이 들기도 하고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유가족들이 이제 고인의 시신을 출상을 하게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은

그러나 그 나라에서 또 만날 그 날을 우리는 기약하게 됩니다

우리는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우리가 더욱더 마음과 뜻을 같이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잘 걷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그 뜻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우리 000 권사님을 다시는 눈물이 없는 그곳으로 데려가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인간의 정을 생각하니 섭섭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참으로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몸이 불편하여 부축을 받으면서도 교회에 출석 잘하였던 그 모습을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 모습도 기억하게 되어집니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지만 눈물과 고통과 쓰라림이 없는

영원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제는 건강하게 편한히 쉼을 얻고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 유가족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이 그 모습을 다시 생각하면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서 그 나라에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볼 그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 우리의 인간의 슬픔과 석별의 정을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귀한 유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다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사후에 그 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믿고 믿음의 온전한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이 후에 있을 모든 절차를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문 10


성경구절 : 벧전 3:17-19

설교제목: 새로운 삶의 시작 ....

설교자 : 최성광 목사


하루는 참새와 하루살이가 숲 속에서 놀다가 해가 석양에 기울어질 무렵에

참새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해가 벌써 기울어졌으니 내일 다시 만나서 놀자.

그렇게 말할 때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참새에게 내일이 무엇이냐?

내게는 내일이 없다.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우리 인생에게는 내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루 하루가 하루살이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생명 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가 생명 있을 때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통해서"성도의 죽음은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나 영혼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거룩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체가 변해서 액체가 되듯이 액체가 변해서 기체가 되듯이

죽음은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변화 받는 순간입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계의 삶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땅에서의 고난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바로 죽음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 특히 거룩한 성도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나그네의 길을 청산하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출발하는

순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 5: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향살이의 생활이 아무리 넉넉해도 정신적으로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버지 집은 영원한 반석이 있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만족함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완전하고 풍성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서의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고000성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말고 그의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마음껏 기뻐하고 축복하는

이 순간이 되어야 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나그네 삶을 점이라고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뜬구름 잡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으로 살다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흙의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압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날 고통도 없고 한숨도 없고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낙원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을 육에서부터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로

받아들임을 우리가 바라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생활 가운데서 종말론적인

삶을 예비하면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한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랑하는 딸을 맞이하여서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이 땅에 남은 모든 형제자매들과 특별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성껏 몸과 마음을 다해 효를 다하므로

사랑하는 이 가정이 모든 후손들이 복되고 번성해서 믿음의 계보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이어지는 은혜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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