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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큐티

개천을 많이 파 라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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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왕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왕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예언자들에게 가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세 왕을 함께 불러 모압의 손에 넘겨주려고 하신다." /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유다 왕 여호사밧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왕을 생각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어쨌든 하프 켜는 사람을 데려와 보십시오." 하프 켜는 사람이 연주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내려왔습니다. / 그러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골짜기에 도랑을 많이 파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골짜기에는 물이 가득 찰 것이다. 그러니 너희와 너희 소들과 너희 가축들이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은 여호와의 눈에는 하찮은 일입니다. 그분이 또한 모압 사람들을 당신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 그러면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중요한 성을 공격하고 또 모든 좋은 나무를 베어 내고 모든 샘물을 막고 모든 좋은 밭을 돌로 채워 못 쓰게 만들 것입니다." / 이튿날 아침 곡식제사를 드릴 때 갑자기 에돔 쪽에서 물이 나오더니 그 땅이 물로 가득 찼습니다. / 그때 모압의 모든 사람들은 그 왕들이 자기들과 싸우려고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갑옷을 입을 수 있는 나이부터 그 이상의 모든 사람이 다 모여 국경에 섰습니다. /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해가 물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건너편 모압 사람들에게는 그 물이 마치 피처럼 붉게 보였습니다. / 그들이 말했습니다. "피다. 저 왕들이 분명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서로 죽였나 보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가서 약탈하자." /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가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나 모압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에 들어가 모압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 그들은 성들을 무너뜨리고 비옥한 밭에 각 사람이 돌을 던져 밭들이 모두 돌밭이 되게 했습니다. 그들은 샘들을 다 막았고 좋은 나무들을 다 베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길하레셋의 돌들만 남겨 두었는데 그마저도 무릿매를 가진 사람들이 둘러싸고 공격했습니다. / 모압 왕은 전세가 당해 낼 수 없을 정도로 기우는 것을 보고 칼을 찬 700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에돔 왕이 있는 쪽으로 뚫고 나가려고 했지만 그 역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그러자 모압 왕은 왕위를 이을 자기 맏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곳에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왕하3:13-27,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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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을 많이 파라
물이 없어 죽음의 위기를 맞은 여호람 일행은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엘리사를 찾아가고, 엘리사를 통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모압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절 전쟁터에 난무하는 인간들의 함성과 수군거림 속에서는 침묵하시더니, 잔잔한 거문고 소리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엘리사에게는 응답하십니다. 늦추고, 멈추고, 대세에서 멀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속도를 성과로 치환하는 삶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고요한 말씀의 안식처에 머물러야 합니다. 

16~20절 물이 생겨날 수 없는 상황인데 ‘물을 저장해 둘 개천을 파라’고 명령하십니다. 구덩이의 깊이와 개수는 하나님 약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와 비례할 것이고, 신뢰의 양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채우심과 해갈하심을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앞의 상황에 함몰되기보다 말씀 앞에 서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내 신뢰의 깊이와 너비는 얼마나 됩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14절 여호람은 하나님이 전쟁터로 자신들 일행을 ‘불렀다’(10절)고 경건한 척하며 말했지만, 선지자 엘리사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고 핀잔을 줍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며 그저 여호람의 혈기와 욕심으로 시작되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주신 감동’ 등 그럴싸한 종교 용어와 수식어로 치장하여 합리화하고 있는 내 삶 속의 이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21~27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공급하신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 말씀에 무지한 모압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햇살에 반사되는 물의 빛깔을 보고 연합군이 서로 싸워서 흘린 피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즉시 공격을 감행하지만, 오히려 목마름이 해소되어 기운을 차린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맙니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모스’ 신뿐입니다. 이 우상의 예배 방식은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이들의 최후는 이토록 비참합니다. 

기도
공동체-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림 없는 말씀에 모든 상황을 맡기게 하소서.
열방-지난 100여 년 동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의 기독교인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 지역에 교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마련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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