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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계명(마22:34-40) / 정필도 목사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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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7_주일1부예배 from Sooyoungro Church on Vimeo.


가장 큰 계명 
20150927 
본문 / 마태복음 22:34~40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율법사의 질문은 종교적인 질문입니다. 이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질문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하지 말라’는 계명과 ‘하라’는 계명으로 나누어 개수를 세어보았습니다. ‘하지 말라’는 계명이 365개, ‘하라’는 계명은 248개로 총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장로의 유전’이라는 것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사람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고 지키라고 한 계명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고르반’이 그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연로한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드려야 할 돈을 하나님께 드리면, 부모님께는 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계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부모를 섬기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인데,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잘못된 계명이 많이 있었습니다. 

계명이 많다 보니 밤낮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지,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 논쟁했습니다. 
계명이 많이 있다 보니 율법사는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한 마디로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많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랑하라’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도둑질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의한 짓을 하겠습니까. 사랑한다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빚 외에 다른 빚을 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물질적으로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꾸어주고 나누어주며 살지, 꾸러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빚은 져도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 사랑의 빚을 질까요? 사랑 받을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존경하고, 대접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을 베풀게 됩니다. 그래서 일일이 다 보상할 수 없으니 빚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입니다. 

로마서 13장 8~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간음하지도 않을 것이고, 살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도둑질하지도 않을 것이고, 탐내지도 않을 것이고, 계명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다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멋지게 정리해서 말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계명 중에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계명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계명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인가, 믿음을 확인해보는,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 있는가 없는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증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훌륭한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십일조 생활을 아주 철저히 했습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다 계산해서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 생활 뿐 아니라, 안식일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1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42). 첫째 되는 계명을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평생 교회 다닌다고 해도 그것이 믿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 헌금을 철저히 드리고,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바리새인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믿음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찬양대 지휘를 할 수도 있고, 반주할 수도 있고, 찬양대에서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모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지옥에 갈 사람인지, 하나님의 사람인지 구별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미지근하게 적당히 사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지못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겠습니까. 기쁨으로 목숨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거룩하게 살려고 하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짓기도 전에 다윗에게 복을 쏟아부어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무엇인가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셔서 다윗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창 28:20~22). 
야곱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이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만사형통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라반의 집에 20년 있는 동안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야곱이 믿음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자손,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불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야곱을 드러내셨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높이시고, 야곱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야곱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의 조상 중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 가지를 분명히 결단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다른 신은 절대 섬기지 않겠습니다. 
둘째,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이 세 가지를 결단하고, 이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이 결심한 대로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슷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꿈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힘 주시는 대로 이 나라를 복음화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저는 늙고 병들어서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순교하기 원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과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백 배의 복을 받습니다(막 10:29~30).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으로 인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축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장차 이들이 받을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두 번째 계명이 첫째 계명과 같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영접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0장 9~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역자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역자의 말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스스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형제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가 시끄럽고,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이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녀, 영생에 들어갈 사람을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 영벌에 들어갈 사람을 염소에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나의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지만, 예수님께서도 사랑하셔서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그에게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 때, 항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가정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교회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며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괴롭히는 박해자를 위해 기도해보세요. 그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당연히 지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나를 괴롭히는 악한 자에게 악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말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저는 그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미운 짓을 하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저주 받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눈에 보이면, 저는 그 사람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그 사람을 끌어안아주고 싶을 만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셔서 변화시키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큰 일꾼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그 후로는 제가 간구하는 대로 응답 받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인데, 듣고 잊어버리지 말게 하시고, 마음에 새겨놓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 게시물은 admin님에 의해 2015-11-17 11:20:03 주일예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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